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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기, 궁궐의 빛에서 새로운 세상의 힘으로 ”
 건청궁, 고종의 자립과 근대적 개혁의 열망 왜 하필 건청궁에서 최초의 전깃불이 켜지게 되었을까? 그곳에 전깃불이 켜진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선 먼저 건청궁의 내력을 알아야 한다. 12살 어린 나이에 보위에 오른 고종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10년 동안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섭정(군주가 직접 통치할 수 없을 때에 군주를 대신하여 나라를 다스림 또는 그런 사람)을 받아야 했다. 드디어 고종 10년인 1873년, 대원군의 하야로 왕의 친정 체제가 마련되던 그때 건청궁 건설이 시작되었다. 아무도 몰래 왕실의 사비를 들여가며 궁궐 안 북쪽 가장 깊숙한 자리에 몇 십 칸의 건물을 건축하였는데, 공사가 끝나기 전에 발각되어 신하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경복궁 중건이 막 끝난 때에 새로운 전각을 짓는 역사役事는 백성의 부담을 가중시켜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고종은 건물이 거의 완성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중단할 수 없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면서 결국 완성하였다. 이는 아버지 대원군으로부터의 정치적 자립에 대한 상징이며,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건청궁은 경복궁 후원 영역인 향원정香遠亭의 북쪽에 자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랑채, 안채, 별채 등과 손님맞이 공간으로 구성되어 궁궐 건축의 격식보다는 양반주택에 가까운 생활의 편리함이 돋보이는 공간이다. 왕의 거처인 장안당長安堂, 왕비의 거처인 곤녕합坤寧閤, 그리고 왕의 서재인 관문각觀文閣 등이 중심이 되었는데, 그 가운데 관문각은 1888년 러시아인 사바틴(A. S. Sabatine)이 관여하여 궁궐에 지은 최초의 서양식 건물로 탈바꿈한다. 그리고 창덕궁에서 집옥재集玉齋를 옮겨와 어진을 봉안하고, 서재 겸 외국 사신을 맞이하는 장소로 사용했다. 중국풍의 이 건물은 서구의 발달된 문물을 받아들이려는 고종의 의지를 담고 있으며, 이와 관련된 서적을 보관하는 곳이기도 했다. 장안당의 북행각은 곳간 구실을 하던 곳이지만, 건청궁 전기 가설 후 발전시설을 갖춘 전기실을 설치하였다.  고종의 개화 노력과 전기 도입 고종은 서양 과학기술에 대한 강한 호기심을 갖고 있었으며, 외국과의 문물 교류에도 적극적인 편이었다. 개항과 함께 1876년(고종 13년) 조일수호통상조약朝日修好通商條約이 체결되면서 당시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통해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고 한창 안팎으로 부국강병에 힘쓰고 있던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하였다. 이 무렵 조선정부는 3차에 걸쳐서 일본에 수신사修信使를 파견하였는데 특히, 1881년 3차 파견에서는 앞선 두 차례의 수신사 왕래를 계기로 더욱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을 파견하였다. 모두 12개 반으로 각각 담당분야를 나누어서 3개월여에 걸친 일본의 신문물 시찰을 통해 공식 견문보고서가 만들어지고, 일기류를 남기는 등 조선 조정에 상세히 보고하였다. 이 무렵 조선정부는 1881년 학도學徒 25명과 공장工匠 13명을 포함한 영선사領選使를 청나라에 파견하여 천진天津에서 처음으로 전기창電氣廠을 견학하고, 전기학을 공부하게 하였다. 일본 신사유람단을 통해 동경에서의 전기등 점등 시험을 견습하고 청나라에서 전기학을 공부하여 점차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그러던 차에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이 체결되고, 이듬해 보빙사報聘使를 미국에 파견하여 주요 기관과 산업시설을 시찰하였다. 당시 보빙사 일행은 발전시설을 견학하고 발전기로부터 전기가 생산되어 전등이 켜지는 전 과정을 지켜보았다. 일행 중 유길준은 이러한 전깃불을 ‘마귀불’이라고 하여, 자신이 쓴 『서유견문西遊見聞』에 감탄의 내용을 전하고 있다. 그는 일본에서도 전기등 점등을 견학하였는데, 그 자세한 내용을 미국 발전시설에서 정확히 이해하게 되었고, 조선에 전기 도입을 역설하였다. 보빙사 일행은 미국에 머무는 동안 에디슨전기등회사와 전등설비 도입을 상담하였고, 신문명에 대한 상징성과 개화 홍보 효과가 가장 큰 장소로서 왕과 왕비가 거처하던 건청궁에 우선 전기등 가설을 결정하고 전등 플랜트를 발주하였다. 건청궁의 전등 설비 당시 조선의 전기 도입은 나라 안팎의 사정을 고려해 볼 때 매우 획기적인 일이었다. 경복궁, 건청궁에 켜진 전깃불은 16촉광 백열등 750개를 켤 수 있는 규모의 설비였다. 에디슨 다이너모(Edison Dynamo) 발전기 7kW 3대와 왕복운동 증기기관, 보일러 등으로 이루어진 초기 발전소 형태를 띤 것으로, ‘전기등기관소電機燈機關所’, 그냥 줄여서 ‘전기소’ 또는 ‘전등소’라고 불렀다. 석탄을 연료로 하였으며, 발전방식은 보일러에서 발생시킨 증기로 증기엔진을 회전시킨 다음, 엔진의 플라이휠에 벨트를 걸어 다이너모의 전기자를 회전시켜 전기를 생산한 기전機電 시스템이었다. 즉, 화력발전소의 형태를 갖춘 것이다. 발전설비가 수랭식(水冷式, Water cooling)이었기 때문에 가열된 증기를 식히기 위해 물이 필요했으며, 건청궁 앞 향원지香遠池의 연못물을 끌어다가 냉각수로 사용하였다. 건청궁의 전깃불을 ‘물불’이라고 부른 까닭이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며, 자연히 연못의 수온이 올라가면서 그곳에 살던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리하여 이를 보거나 전해들은 사람들은 당시 어지러운 시국에 빗대어 ‘나라가 망할 징조’라고 하는 말들이 나돌게 되었다. 전등소로부터 전선을 연결하고, 건청궁 각 전각에 전등을 가설 점화하여 밤새도록 불을 밝히게 되면서 막대한 비용이 소모되었다. 원래 밤잠이 없어 늦게까지 깨어있고 여흥을 즐기는 시간이 많았던 왕과 왕비에게는 전등의 빛이 매우 편리하고 요긴한 것이었다. 특히 구한말 정치적, 역사적 격동의 사건들이 주로 밤을 틈타 발생하면서 고종은 궁궐 내 전등을 밝혀서 새벽까지 환하게 켜두라는 명을 내리기도 하였다. 발전 연료인 석탄 비용과 잦은 고장으로 인한 수리비뿐만 아니라 전등설비를 가동하기 위해 파견된 외국인 기사의 보수 등이 만만찮았으므로 전등소의 원활한 운영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전등소 운영의 막대한 비용과 전기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불까지 자주 깜빡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를 보고 ‘건달불’이라고 불렀다. 건달의 속성을 지닌 불이라는 뜻이다.  전등 설비의 확대와 전기 시설의 대중화 건청궁에 설치된 전등소는 재정 부족과 에디슨전기등회사가 파견한 초기 미국인 전등교사 맥케이(William Mckay)죽음으로 잠시 운전이 중단되었다. 새로운 영국인 전등교사를 초빙하여 재운전에 들어갔지만, 이 또한 여러 번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원활한 전기 공급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1894년 창덕궁에 제2전등소가 준공되었으며, 그 규모는 240마력의 증기설비와 16촉광 백열전등 2,000개를 켤 수 있는 발전설비로 종전의 건청궁 전등소의 약 3배에 달하는 크기였다. 그리하여 창덕궁에도 처음 전등이 점화되었는데, 결국 재정 문제로 중요한 몇 개 전각에 국한하게 되었다. 고종은 점등과 때를 맞춰 양력 5월 7일 창덕궁으로 이어했다가 한 달 반 만에 다시 경복궁으로 환궁하였다. 이때도 역시 낮밤이 바뀐 생활이 여전했다. 황현의 『매천야록梅泉野錄』에 의하면, 고종은 창덕궁에 이어하면서 동궁을 수리하였는데 당시 동학란이 점점 급해지는 데도 토목의 역사에 집중하였다고 한다. 매일 밤 전등을 켜고 배우와 악공을 불러다가 아리랑타령을 하였는데, 타령은 곡을 연주하는 것의 속칭이다. 결국은 당시 일본공사가 알현을 강청하고 내정개혁을 강요한 사건이 일어나고서야 그쳤다고 한다. 그렇게 된 진짜 사정이야 알기 어렵지만, 백성들에게 비친 전깃불과 그것을 이용하는 왕실의 모습은 결코 상식적이고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고종은 개화와 신문명을 통해 나라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겠지만,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과 백성들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파악하고 받아들일 만큼 능동적인 개혁주의자는 아니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재정 부담과 국권의 약화와는 상관없이, 전기를 필요로 하는 분야와 전기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확대되어 갔다. 드디어 1898년 1월 18일 이근배, 김두승 두 사람의 이름으로 한성오서구漢城五署區 내에 전차•전등•전화설비 시설 및 운영권이 농상공부에 신청되었고, 1월 26일자로 허가를 받아 한성전기회사가 설립되었다. 경복궁에 우리나라 최초로 전깃불이 켜진 지 11년이 지난 일이다. 경복궁의 전등이 경복궁 전등소의 발전기와 직결된 개별적인 자가 전등 설비라면, 한성전기회사는 중앙의 발전소에 배전 설비를 사용하여 일반 가정과 사무실 등에 전기를 공급하게 됨으로써 이 땅에도 처음으로 근대적 의미의 전기사업 기업이 성립된 것이다. 글ㆍ민병근 한국전력공사 전기박물관 학예연구사 사진ㆍ한국전력공사 전기박물관 http://cafe.daum.net/seoseokjoong?t__nil_cafemy=ite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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