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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산책
작성자 나무그늘
작성일 2012-01-16 (월) 17:52
ㆍ조회: 1427    
http://www.seoseok.co.kr/cafe/?sinmoon.2495.55
“ 세계의 수도, 터키 이스탄불 ”
 
이스탄불의 탄생
기원전 1000년쯤에 이 지역에 [세미스트라]라고 하는 최초의 도시가 세워졌고, 기원전 685년에는 지금의 [위스크다르] 지역에 [칼케돈]이란 그리스 식민 도시가, 그리고 기원전 660년에는 그 건너편에 [비잔티온]이라고 하는 또 다른 그리스 식민 도시가 건설되었다. 고대 세계가 끝나가고 있던 기원후 330년에 동로마를 건설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비잔티온을 새로운 제국의 수도로 삼고 대규모 도시 건설을 감행하여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도시로 만들고는 자신의 이름을 따서 [콘스탄티누폴리스]라 이름 지었다. 주민의 대부분이 그리스인이었던 동로마제국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조금씩 그리스인들의 제국으로 변해 갔다. 기원후 600년쯤에는 황실에서조차 로마의 언어인 라틴어는 잊혀지고 그리스말만이 쓰이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정치와 사회 조직에서는 로마의 체제를 이어받고 구성 민족과 언어, 풍속을 비롯한 문화에 있어서는 그리스 전통을 이어 받았으며 새로운 종교인 그리스도교로 정신적 통일을 이룬 비잔티온 제국이 탄생했다.
 
보스포루스 해협의 입구에 자리 잡은 이 도시는 통상과 방어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특히 해군이 강했던 비잔티온 제국이었기에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내륙 쪽으로 견고하기 짝이 없는 성곽을 갖춘 콘스탄티누폴리스는 난공불락의 도시였다. 626년의 페르시아와 아바르 족의 연합군의 공격도, 678년과 718년에 있었던 아랍 함대의 포위도, 913년의 불가리아족의 침입도, 1090년에서 다음해까지 이어진 베체네크족의 거센 공격도 이 도시를 함락하는 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1204년, 베네치아가 주축이 된 제4차 십자군은 같은 그리스도교였기에 방심하고 있는 틈을 타 콘스탄티누폴리스를 공략하여 점령했다. 그 후 60여 년에 걸친 가혹한 약탈과 파괴가 뒤따랐다.

 
 
그러나 지상의 그 어느 것도 영원할 수는 없다. 제4차 십자군의 잔당을 몰아낸 뒤, 비잔티온은 더 이상 제국이 아니라 지방 군소 왕국의 하나로 겨우겨우 명맥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1453년 5월 29일, 화요일 새벽에 오스만 터키의 불세출의 영웅 메메드 2세에 의해 콘스탄티누폴리스는 함락되었다. 새로운 정복자는 이미 황폐해질 대로 다 망가진 이 도시를 재건하고 새로운 주민을 강제 이주시켜서 자신의 새로운 제국의 수도로 삼았다. 도시의 이름도 더 이상 콘스탄티누폴리스가 아니라 [이스탄불]로 바뀌었다. [이스탄불]이란 말은 비잔티온 제국 주변 야만인들의, 그리스어로 [도시로]라는 뜻의 표현 [이스탄 폴리]가 와전된 발음에서부터 온 말이다. 오스만 제국의 수도로서 이스탄불은 한 번도 외적의 침입에 노출된 적이 없다. 그런 까닭에 오늘날 이스탄불에는 수많은 유적이 별로 손상되지 않고 예스러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전세계에서부터 몰려온 나그네들은 이 도시만이 가지고 있는 풍취에 넋을 잃게 마련이다.
 
1923년, 병들어 스러져 가던 오스만 터키를 멸망시키고 새로운 터키 공화국을 건설한 아타튀르크 케말 파샤는 수구 세력의 본거지인 이스탄불을 버리고 터키의 중심부에 자리 잡은 또 다른 유서 깊은 도시인 앙카라로 수도를 옮겼다. 그리하여 기원후 330년부터 자그마치 1600년 가까이 세계 제국의 수도로서 이웃 나라들에게 두려움과 선망의 대상이었던 이 도시는 수도로서의 운명을 다하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도 이스탄불은 1,500만 명에 가까운 인구가 살아가는 터키 제1의 도시요, 경제적, 문화적, 교육적 중심으로서의 역할을 유지하고 있다.
 
 
2000년의 유물을 간직한 세계 최대 야외 박물관 이스탄불
이스탄불을 찬찬히 다 보려면 한 달로는 어림도 없다. 적어도 석 달은 머물면서 여유를 가지고 둘러보아야만 할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아기아 소피아 성당과 그 주변이 압권이다. 이곳은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한 유적들이 밀집해 있다. 아기아 소피아는 크기에 있어서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성당이지만 건축학적인 면에서 세계 최고라 할 수 있다. 땅을 나타내는 네모난 건물 위에 하늘을 상징하는 둥근 돔을 올리려는 시도는 수많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쉽게 성공할 수 없었다. 육중한 돔의 하중을 이겨내는 일은 하나의 커다란 도전이었다.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고 기원후 537년, 인간이 만든 건물 가운데 가장 경이롭고 아름답다는 아기아 소피아가 완성되었다. 이 건물은 공학적으로도 기적에 가까워 1500년 동안 숱한 지진에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오늘날까지 꿋꿋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기아 소피아 성당은 또한 비잔티온 시대의 모자이크 성화로도 유명하다. 12세기에서부터 14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이 성화들은 오늘날까지 화려하고 성스러운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아기아 소피아 앞의 광장 건너편에 있는 술탄 아흐메드 모스크는 파란 창을 통해 건물 내부로 비치는 빛이 푸른색을 띄어 흔히 블루 모스크라 불린다. 이 건물의 외곽선은 보는 이의 눈길을 밑에서부터 하늘로 이끄는 마력이 있어 자신도 모르게 신의 위대함을 느끼게 해 준다. 아기아 소피아의 길 건너편에 자리 잡은 예레바탄 지하 저수조는 336개의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데 맑은 물 위에 비치는 기둥들의 모습은 신비함 그 자체다.
 
아기아 소피아 뒤쪽으로는 오스만 터키의 술탄들이 살았던 토카프 궁전이 있다. 옛 비잔티온 시의 아크로폴리스 자리에 세워진 이 궁전은 오스만 터키의 중심이었다. [대포의 궁전]이란 뜻을 가진 이 궁전은 옹벽으로 완벽한 방비 시설을 갖췄지만 정작 이곳에서는 단 한 번의 전투도 치러진 적이 없다. 궁전 안에는 거대한 규모의 부엌과 술탄의 여인들의 거처인 하렘, 도서관, 각료회의장 등과 같은 화려한 건물들이 위용과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그네들의 눈길을 붙잡는 것은 자신의 두 눈으로 보기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세계 최고의 보석들을 전시한 보석 박물관이다. 이 보석들을 보고 나면 권력도 돈도 없는 아랫것들이 다이아몬드나 사파이어, 루비 같은 보석을 탐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를 여실히 느끼게 된다. 구 이스탄불의 중심지에서 북쪽으로 조금 벗어난 곳에 있는 호라 수도원은 14세기 비잔티온 성화가 원형 그대로 보전되어 있는 아주 귀한 곳이다. 원래 300점이 넘는 성화가 있었지만 지금은 80여 점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이미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비잔티온 성화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
 
 
현대 대도시의 모든 문제를 안고 있는 이스탄불
이스탄불은 역사적인 도시인 동시에 1,500만 명이 모여 사는 거대한 현대 도시이기도 하다. 따라서 교통 체증이나 매연과 오염의 문제도 심각하다. 지금은 난방 연료를 가스로 바꿔서 괜찮지만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갈탄을 땠기 때문에 겨울이면 이스탄불의 대기는 노란 연기로 역한 냄새가 났고, 미세 먼지가 심해 반나절이면 옷의 소매와 목 부분이 누렇게 변하곤 했었다. 보스포루스 해협을 잇는 다리가 두 개 있지만 길은 좁고 차는 많아 하루 종일 정체가 풀리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이스탄불 시민들은 배를 이용하여 해협을 건너는데 출퇴근 시간에는 배들마저 만원이어서 시루떡처럼 꽉 끼어서 다녀야 한다. 이스탄불을 방문해 본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쯤은 이 교통지옥을 맛봤을 것이다. 주거문제도 만만치 않다. 이스탄불의 구 시가지를 빠져 나와 갈라타 다리를 건너 신 시가지로 나와도 교통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특히 상업과 행정의 중심이라는 탁심 광장 부근은 정체가 심하다.
 
오늘날의 이스탄불 시민들이 어떻게 사는가를 보려면 탁심에서 갈라타 탑으로 이어지는 [이스티클랄 카데시] 거리를 가 봐야 한다. 이 거리는 이스탄불의 중심가로 커피 맛과 분위기가 일품인 카페와 고급 레스토랑, 온갖 명품점들이 다 모여 있는 곳이다. 또 마르마라 바닷가를 산책하는 것도 이스탄불에서만 즐길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이다. 하지만 2006년 이후, 새로운 이스탄불 시장이 도시를 정비한다면서 바닷가의 모든 가게와 집들을 철거해 예전에 느꼈던 이스탄불만이 줄 수 있었던 중세풍의 정취는 완전히 사라졌다. 아기아 소피아 주변에 있던 다 쓰러져가던 허름한 찻집에서 마시던 커피와 길거리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을 사 먹던 정다운 풍경은 사라진 지 오래다. 탁심 광장과 이스티클랄 거리에도 수많은 노점상들이 있어 몸을 비집고서야 지나 갈 수 있었던, 그래서 사람 냄새가 물씬 나던 풍경은 이제 영원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개발과 정비라는 미명 아래 역사와 문화가 파괴되는 현실을 언제나 우리는 피할 수 있을까? 하릴없는 한탄이다. 세상은 변하기 마련이다.
 
글 | 사진·유재원 한국외국어대학교 그리스·불가리아어학과 교수
출처: http://newsplu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12/23/201112230219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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