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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산책
작성자 나무그늘
작성일 2012-01-16 (월) 17:51
ㆍ조회: 1338    
http://www.seoseok.co.kr/cafe/?sinmoon.2494.55
“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정신으로 선비답게 살아가기 ”
 
왕도정치의 꿈을 위한 선비의 자세
조선조 사대부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닦았다. 이를 수기修己라 한다. 그들은 이를 바탕으로 자신들이 배운 바를 정치 공간에서 실현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다. 이를 치인治人이라 한다. 수기치인修己治人은 『대학大學』이 제시한 사대부의 이상적 삶의 모습이기도 하다. 조선조 사대부 역시 수기치인의 실현을 삶의 목표로 삼는다. 이러한 삶은 쉬운 것이 아니었지만, 이를 실현하고자 한 맑은 영혼의 사대부들도 적지 않았다.
 
항간에 떠도는 말을 들어 보니, 지금 역병疫病의 참상은 일찍이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지경인데도, 조정에서 이를 심각하게 생각하여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일조차 전혀 없다고들 하며 질책을 심하게 하고 있습니다. 삼가 생각해 보면, 지금의 이러한 상황은 비록 힘쓸 도리가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만, 그렇다고 이대로 수수방관해서야 되겠습니까. 온 나라 팔도의 수 천 리나 되는 길바닥에 시체가 쌓여 있는 지금 상황은 예전의 굶주림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환곡還穀을 거두고 장정을 뽑아 가는 일이 여느 해와 다름이 없으니, 민심이 이 같은 지경인 것을 어찌 괴이하다 하겠습니까. 더 늦기 전에 특별히 은명恩命을 내리시고, 백성의 부담을 다소 완화하도록 조치한다면 그나마 민심을 안정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지방 수령들에게만 내맡겨 그들에게 중간에서 선처하도록 할 뿐이라면 은덕을 베푸는 조정의 뜻이 백성에게 분명히 전달되지 못할 것이니, 부디 생각해 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여북계이공與北溪李公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 1651~ 1708)이 고종형 이세백李世白에게 보낸 편지다. 이세백은 내외직을 두루 거쳐 좌의정에 이른 노론의 중심인물이었다. 김창협은 부친인 김수항이 정쟁으로 사망하자, 이후 벼슬길에 나서지 않고 문학과 학자의 길을 걸음으로써 그 이름을 높였다. 그런 김창협이 중앙의 요직에 있던 고종 형에게 전염병으로 도탄에 빠져있던 백성들의 삶과 민심의 수습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수많은 백성이 목숨을 잃고 있는데도, 조정의 중신이나 지방의 목민관 등, 어느 누구도 민생을 위한 대책조차 세우지 않은 현실을 진단한다. 목민관은 현실이 이러한데도 그저 빌려 준 환곡이나 거두고, 장정을 징집하는 등, 어처구니없는 일처리로 민심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음을 비판한 다음, 중앙의 요직에 있는 고종 형이 직접 나서 목민관의 행태를 바로잡고 도탄에 빠진 민생을 바로잡을 것을 촉구하고 있다. 김창협은 당시 이세백보다 16살이나 적었지만, 고종 형에게 선비다운 정신과 곧은 말로 사대부의 정치적 이상을 잃지 않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세백 역시 나이 어린 동생의 충고를 받아들일 만큼의 국량을 지녔고, 평생 진정한 사대부의 자세를 놓지 않았기에 동생으로부터 이러한 편지를 받았던 것이다.

 
민본을 위한 남다른 맑은 마음
김창협은 현실 정치의 폭력성과 정치적 이상 추구와의 괴리를 경험한 뒤로, 평생 학자의 길을 추구하며 살았다. 조정에서 높은 관직으로 그를 불렀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김창협은 선비로서의 맑은 영혼을 지키기 위하여, 생활과 학문 속에서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추구하였다. 그가 노비를 한 인간으로 생각한 것도 이러한 인식의 연장이었다.
 
여종인 의義가 끝내 일어나지 못했으니, 견딜 수 없이 참담하고 가슴이 저민다네. 그의 근면과 노고, 충성스러움과 순종함은 나라의 충신과도 견줄 만 했는데, 노고에 대한 보답을 채 하기도 전에, 갑자기 역병에 걸려 죽고 말았네. 더욱이 그녀의 시신마저도 뜻대로 염습조차 하지 못했을 터, 내 마음도 이처럼 슬픔을 잊기 어려운데, 더군다나 자네 마음은 어떻겠는가. ― 여경명與敬明
 
아우인 김창집金昌緝에게 보낸 편지다. 아우의 여종이 죽자 여종을 위해 가슴 아파하는 마음가짐도 주목할 만하지만, 여종의 죽음에 슬퍼하는 아우에게 편지로 위로하는 모습 역시 너무나 살갑다. 당시 사대부는 노비를 한 인간으로 인식하여 인간적으로 대우해 주는 경우는 드물었다. 대부분의 경우, 여종을 성적 대상으로 생각하거나 가문의 재산의 일부로 여겼을 뿐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하면, 김창협이 여종을 생각하는 마음과 그의 죽음을 애달파하는 정감은 인간적인 차원을 넘어서고 있다.
 
흔히 유학에서 위정자는 백성을 무겁게 여기고 사랑해야 한다는 이념을 내세워 중민重民과 애민愛民을 주장한다. 또한 백성은 한 국가의 존망과 직결되므로 그들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전근대 사회에서 백성은 조세와 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백성을 경제적으로 안정시키고, 나라가 백성을 돌보는 것은 위정자를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도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백성 본위의 생각은 유학을 신봉하는 나라인 한 나라가 끝날 때까지 이를 통치이념으로 내세울 수밖에 없었다.
 
김시습이 “나라는 백성의 나라이다.”라 하여 백성의 정치적 위상을 강조한 것도 논리적으로는 그럴 법하다. 하지만 민본은 논리와 생각 속에서는 가능하지만 실제 사대부들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사대부들의 마음과 생각 속에는 노비는 물론 백성들조차 자신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 생활에서 김창협이 보여준 민본의 마음과 이상 정치를 위한 맑은 마음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이 때문이 아니겠는가?
 
글·진재교 성균관대학교 한문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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